전국 | 호남을 지킨 난공불락의 입암산성 [전라도의 숨은 명산 입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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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지우 작성일2025-12-15 11:03 조회8회 댓글0건본문
우리나라에서 어지간<a href="https://www.8282kc.com/Front/Introduction/DlvrMny.asp?CTR_SEQ=1016&gMnu1=201&gMnu2=20107" target="_blank" >중국배대지</a>한 산봉우리마다 성터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손영식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의 저서 <한국의 성곽>에 의하면 남한 지역에서만 성터까지 포함해서 1,848개소이며 이 중 90%가 산성이라고 한다. 산성의 대부분은 능선을 따라 성을 쌓는 포곡식이다. 대체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삼국시대에 많이 축조되었다. 성(성곽)은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사생을 건 피의 역사다. 하나하나가 영광과 오욕의 시간을 담고 있는 기록이다. 이 많은 성곽 유적 중 현재는 295개소만이 국가 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그 나머지는 예산 부족으로 방치, 철거되고 있다.
장성 입암산성笠巖山城은 호남평야에서 나주평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중요한 관문으로 사적 제384호로 지정된 난공불락의 요새다. 1593년(선조 26) 전라감사 이정암은 입암산성을 보고 "천험天險의 요새로 되어 있어 난을 당해 화를 피하기 이보다 좋은 데가 없다. 제일 훌륭한 천험의 조건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지형적인 장점도 있지만 수천의 군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입암산성습지에 사는 희귀종,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데크를 설치했다.
입암산성습지에 사는 희귀종,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데크를 설치했다.
계곡마다 물이 넘치는 황룡강의 발원지
산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적의 공격력을 약화시키고 항전함과 동시에 일반 백성들의 피란처로 이용된다. 입암산성은 매우 과학적인 산성이다. 동쪽, 서쪽, 북쪽은 지형 자체가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출입구에 해당하는 남쪽 남창골은 4km에 이르는 골짜기다. 이곳부터는 초입에 적을 막는 차단성, 익성, 적을 유인하는 옹로 등이 있다. 성 안에서 방어하는 농성전에 돌입하면 물이 생명이다. 입안산성은 성 내부에 7개의 해자(수중보)를 설치해 유사시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평소에는 성안에서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인다. 산성은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산성골을 동, 서, 남, 북문으로 보호하고 있다.
갓바위, 실질적인 정상이다.
갓바위, 실질적인 정상이다.
산성 안쪽 8부 능선 500m 지점까지 평지 같은 고원 분지이며, 이곳에 관청, 숙소, 군기고, 무기창고, 군량 창고를 비롯해 30여 호의 민가, 안국사와 암자, 우물터가 있다.
입암산성은 삼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약 5.18km에 달한다. 현재 3.2km 정도 남아 있다. 후백제시대 나주를 왕건에게 점령당한 견훤의 중요한 요새이기도 했다.
이곳은 1256년 몽골의 제7차 침공이 있을 때 송군<a href="https://www.8282kc.com/Front/Introduction/DlvrMny.asp?CTR_SEQ=1016&gMnu1=201&gMnu2=20107" target="_blank" >중국배대지</a>비宋君斐
장성 입암산성笠巖山城은 호남평야에서 나주평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중요한 관문으로 사적 제384호로 지정된 난공불락의 요새다. 1593년(선조 26) 전라감사 이정암은 입암산성을 보고 "천험天險의 요새로 되어 있어 난을 당해 화를 피하기 이보다 좋은 데가 없다. 제일 훌륭한 천험의 조건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지형적인 장점도 있지만 수천의 군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입암산성습지에 사는 희귀종,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데크를 설치했다.
입암산성습지에 사는 희귀종,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데크를 설치했다.
계곡마다 물이 넘치는 황룡강의 발원지
산성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적의 공격력을 약화시키고 항전함과 동시에 일반 백성들의 피란처로 이용된다. 입암산성은 매우 과학적인 산성이다. 동쪽, 서쪽, 북쪽은 지형 자체가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출입구에 해당하는 남쪽 남창골은 4km에 이르는 골짜기다. 이곳부터는 초입에 적을 막는 차단성, 익성, 적을 유인하는 옹로 등이 있다. 성 안에서 방어하는 농성전에 돌입하면 물이 생명이다. 입안산성은 성 내부에 7개의 해자(수중보)를 설치해 유사시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평소에는 성안에서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인다. 산성은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산성골을 동, 서, 남, 북문으로 보호하고 있다.
갓바위, 실질적인 정상이다.
갓바위, 실질적인 정상이다.
산성 안쪽 8부 능선 500m 지점까지 평지 같은 고원 분지이며, 이곳에 관청, 숙소, 군기고, 무기창고, 군량 창고를 비롯해 30여 호의 민가, 안국사와 암자, 우물터가 있다.
입암산성은 삼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약 5.18km에 달한다. 현재 3.2km 정도 남아 있다. 후백제시대 나주를 왕건에게 점령당한 견훤의 중요한 요새이기도 했다.
이곳은 1256년 몽골의 제7차 침공이 있을 때 송군<a href="https://www.8282kc.com/Front/Introduction/DlvrMny.asp?CTR_SEQ=1016&gMnu1=201&gMnu2=20107" target="_blank" >중국배대지</a>비宋君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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